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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둥지 블로그
#14 2019 / 10 / 31 - 제목 : 노점상 (1) 본문
김동식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를 읽다보니 오랜만에 단편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다시는 펜을 잡지 말자고 다짐한 게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 글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오늘 쓸 단편의 제목은 '노점상'이다. 기억을 팔아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 학생, 그 학생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최현우는 걸음을 멈췄다. 못 보던 노점상이 있었다. 노점상은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것인지 천장과 벽의 역할을 하는 천막이 온통 찢어진 자국 투성이었다. 또 모래 바람을 얼마나 뒤집어 쓴 것인지 처음에는 파랬을 천막이 누렇게 떠가지고 다가가길 꺼리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최현우는 노점상을 지나치려 했다.
"이봐, 학생. 잠깐 들어올 생각 없나? 내가 학생이 정말로 원하는 걸 파는데 말이야?"
한 노파가 최현우를 불러세웠다. 그는 못 들은 척 지나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노파의 말 속에서 약간의 호기심을 느꼈고 결국 걸음을 멈췄다. 최현우가 노파를 향해 돌아서자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낄낄 웃었다. 그러더니 덥썩 최현우의 손을 붙잡았다. 최현우는 차갑고 주글주글한 손의 감촉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내빼려고 했다. 하지만 작고 가녀린 노파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찌나 힘이 센지 되려 그가 노파에게로 끌려갈 따름이었다.
"저기 왜이러세요. 이거 좀 놓으세요!"
당황한 최현우가 소리를 지르건 말건 그녀는 그를 노점상 안으로 들이밀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끌려가는 도중에도 소리를 질렀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던 거리가 오늘 만큼은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노파의 손에 이끌려 노점상 안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노파는 최현우가 의자에 앉은 뒤에야 손을 놓아줬다. 어찌나 손을 세게 붙잡고 있었던 건지 그의 손은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최현우는 양쪽 손을 번갈아 어루만지며 노파를 노려봤다. 하지만 노파는 실실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을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 모습에 최현우는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노파가 뭘 팔려고 하는지나 들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할머니, 그래서 뭘 파시려는 겁니까. 아까처럼 이상한 짓 하시려고 하면 이번엔 경찰에 신고할겁니다."
"이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경찰들 귀찮게 신고를 하고 그래. 잠자코 있어봐. 내가 학생이 눈 뒤집힐 만한 걸 줄테니까."
노파가 자리에서 일어나 노점상의 뒤편으로 향하는 사이 최현우는 조심스레 노점상 내부를 둘러봤다. 노점상 내부는 단촐했다. 두 사람이 앉은 의자 두 개와 그 사이를 가로막은 책상 하나. 그리고 책상 위에서 흔들리며 빛을 내뿜는 전구가 전부였다. 그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노파가 무얼 하는지 지켜봤다. 노파가 등을 지고 있어 무얼 하는지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어떤 상자 속을 뒤적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노파는 원하는 걸 찾았는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최현우에게 종이 다발을 건네줬다.
"자, 여기. 학생이 원하는 거야. 어때? 살 생각 있어?"
최현우에게는 노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파가 던진 건 학생인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어, 수학, 영어 등. 그가 일주일 뒤에 보게 될 시험지였다. 총 7과목의 시험지를 손에 든 채, 최현우는 시험지와 노파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는 작년도의 시험지가 아닌지 확인해봤다. 제작년도 시험지가 아닌지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신설학교였기 때문에 2년 전의 시험지는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어서 돌려줘."
막 최현우가 수학 시험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별안간 노파가 그의 손에서 시험지를 뺏어들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최현우는 허망한 눈빛으로 노파를 쳐다봤다.
"어때. 학생 마음에 꼭 들 물건일 거라고 했지? 그래서 어떤가. 사겠는가?"
노파의 물음에 최현우는 본인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시험지만 있어도 중간 고사 때 있었던 실수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노파가 어떻게 학교 시험지를 미리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로서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혹시 몰래 카메라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그런 최현우의 의심을 어떻게 눈치 챘는지 노파가 그의 이마를 손으로 치며 말했다.
"예끼. 내가 이 나이 먹고 누구 좋으라고 학생을 등쳐 먹겠어. 얼른 정하기나 해. 살거야 말거야? 이제 다른 손님 받아야 된단 말이야."
최현우는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노파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쉽게 의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 이런 허름한 곳에서 장사하는 노파에게 학교 시험지를 가로챌 만한 힘이 있을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노파에게 그런 힘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적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1학기 때의 실수로 1등급 후반까지 떨어진 성적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방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노파의 말대로 시험지는 그에게 있어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알겠어요. 살게요.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드라마를 보면 이런 시험지를 얻기 위해 수많은 현금 다발과 금괴를 지불하곤 했다. 노파가 얼마를 요구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는 시험지를 사고 싶은게 지금 최현우의 마음이었다. 최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노파의 입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기억을 팔면 된다네."
마침내 노파의 입이 벌어지고 대가가 제시되었다. 하지만 최현우가 상상했던 금전적인 것은 아니었다. 노파는 '기억'을 요구했다.
"기억이요?"
"그래, 기억. 나는 학생의 기억을 원한다네. 학생이 적절한 기억을 팔 때마다 나는 학생에게 시험지를 주겠네. 어떤가? 거래를 하겠는가? 시간이 필요하면 다음에 다시 찾아와도 된다네. 학생이 원하는 게 없어지는 날까지 나는 이곳에서 장사를 할거니까."
노파의 말에 최현우는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기억을 요구하는 걸 보니 노망이 난 게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기에 최현우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초등학생 때 사귀었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을 드릴게요."
최현우의 말에 노파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그 정도의 기억이면 한 과목과 맞바꿀 수 있겠어."
한 과목을 준다는 말에 최현우는 아쉬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집에가서 시험지를 확인해 본 뒤, 다시 노파를 찾아도 늦지는 않는다.
노파가 최현우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지시에 따라 머리를 내밀자 노파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요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최현우의 머리에서 무엇인가 하얀 실타래가 빠져나오더니 노파의 뒷편에 있던 상자 속으로 쏙 들어갔다. 최현우는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 아니었다.
"거래는 끝났어. 어떤 과목의 시험지를 줄까?"
"국어 시험지를 주세요. 국어를 첫날에 시험을 보거든요."
그렇게 최현우는 국어 시험지를 손에 들고 노점상을 나올 수 있었다.
뒷내용을 언제 쓸지는 모르겠다. 사실 오늘 더 쓰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롤을 키고 말았다. urf모드...오랜만에 하니 조금 재미있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했으면서 어느덧 7년 째 롤을 하고 있다. 글쓰기 그만두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게 롤 끊는 거다.